영화 '자산어보'
- 감독: 이준익
- 주연: 설경구 / 변요한
- 개봉: 2021년 3월
- 촬영지: 전남 신안군 흑산도, 도초도 등
- 티빙에서 독점 공개 중. 한글자막으로도 볼 수 있다.
- 영화는 흑백으로 제작. 예산과 영화의 분위기를 모두 고려했다고 한다.
- 「자산어보」란? : 정약전이 흑산도 유배 시기에 연안 주변의 어족들을 관찰하여 쓴 해양생물학 저서. 본래는 흑산어보라 해야 맞지만 흑(黑)자가 뜻이 좋지 않다 하여 검은색을 뜻하는 다른 글자인 자(玆)를 써서 자산어보라 이름함.
- 극 중 인물 창대: 변요한이 연기한 창대라는 섬마을 청년은 자산어보에 언급된 실존인물로 공동저자라 볼 수 있음.
- 시놉시스: 신유사화로 흑산도에 유배 간 정약전(설경구)이 섬 청년 창대(변요한)의 도움을 받아 조선 최초의 어류도감 <자산어보>를 집필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
정약전과 창대, 두 인물을 통해 바라본 성리학적 세계관의 변화와 한계
이 양반은 대역죄인이니께
너무 잘해줄 생각들 말어
나랏일에 충실했던 정씨가문의 삼형제는 천주신학을 받아들인 일로 조정의 탄압을 받는다. 정조가 떠나고 순조 1년. 힘없는 어린 왕은 지켜줄 힘이 없었다. 마지막까지 천주신앙을 놓지 않은 정약종(최원영)은 결국 참수형을 당하고 남은 정약전, 정약용 형제는 그 뜻이 다르다 하여 유배형에 그친다.
본래 정약용이 더 먼 흑산도로 갈 예정이었으나, 형인 정약전이 후에 더 위험인물로 인식되어 대신 정약전이 흑산도로, 동생인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길에 오른다.
뭍에서 멀리 떨어진 소박한 섬마을에서 유배생활을 시작한 그는, 정 많은 과부 '가거댁' 집에 머물며 점차 이곳 생활에 적응해 나간다.
물고기를 알아야 물고기를 잡응께요
호기심이 많은 정약전은 흑산도 주변 바다의 해양생물들에 관심을 갖게 된다. 책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은 창대를 만나게 되면서 더 단단해진다.
'홍어 댕기는 길은 홍어가 알고, 가오리 댕기는 길은 가오리가 앙께요'
허나 성리학을 최고라 여기는 창대는 정약전의 얘기는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물어보는 말에 귀찮다는 듯 대꾸나 할 뿐.
내가 아는 지식과 너의 물고기 지식을 바꾸자
영특하나 신분의 제약으로 그 뜻을 펼칠 수 없는 창대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but 현재는 유배죄인)의 솔깃한 제안을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인다.
두 사람의 합동 연구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점차 스승과 제자 사이를 넘어 벗이 되어 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은 성리학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있음을 알게 되고, 전보다 더 거리를 두게 된다.
흑백 필름이 걷히는 순간은
후반부의 파랑새와 마지막 한 컷 뿐
영화는 내내 섬마을의 파도와 바람으로 그려낸 수묵화 같은 인상을 준다. 큰 기복 없이 담담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그다지 큰 사건은 없지만(있더라도 잔잔한 파도 같다), 두 세계 즉 정약전과 장창대로 대표되는 성리학적 사고의 충돌을 보여준다. 창대는 성리학으로 식견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애쓴 정약전을 통해, 전보다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지만 결국에는 한계를 드러내는 인물이다. 성리학에 대한 굳건한 신념에 출세의 욕심만 있었던 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순수했던 외딴섬의 성리학(창대)은, 뭍으로 나오면서 비틀어지고 흐릿해지다 못해 결국 창대의 유토피아를 깡그리 짓밟는다.
배운 대로 못살면 생긴 대로 살아야지
뒤늦은 발걸음이지만 돌이켜 간다. 방향이 틀렸으면 다시 찾으면 된다. 다시 돌아가는 고향에 스승은 없지만, 벗으로는 남았다.
흑산도가 자산도가 되는 마지막 장면이 오래도록 남는다.
https://youtu.be/VjF8Z0Kbk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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